성적 지향이란?

성적 지향이란?

성적 지향이란  ‘내가 어떤 성별에 이끌리는가’에 대한 문제이다. ‘내가  누구를  좋아한다’에서 그 ‘누구‘의 성별이 어떤가에 대한 문제인 것이다. 따라서 이끌리는 상대의 성별이 나와 다르냐, 같으냐, 아니면 그 외의 경우인가에 따라 다양하게 나누어진다. 그 다양성이란 정말로 다양해서 상상가능한 수많은 조합들이 실제로 존재한다.

동성에 이끌리는 것을 첫 번째 자리에 표시하고 이성에 이끌리는 것을 두 번째 자리에 표시를 해보자. 그리고 해당 성별에 이끌린다면 해당 자리의 수를 1이라고 하고 그렇지 않을 경우 0이라고 하자. 두 자리가 있고 각각 두 가지 값이 가능하다면 총 몇 가지 값이 가능할까? 4가지 값이 있다는건 중등 교육만 받아도 아마 알 수 있을 것이다(경우의 수가 언제 처음 나오는지 모르겠다).  성적 지향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다고 해서 자신의 고정관념 안에서 몇 가지 경우들을 먼저 걸러내서는 안 된다.  세상엔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있고 당신도 그 중 한 명이다.

위에서 찾은 네 가지 경우에 대하여 살펴보자. 가장 쉬운 것은 01이다. 동성에게 끌리지 않고 이성에게 끌리는 것이다. 남자면 여자에게, 여자면 남자에게 끌리는 것이 이 경우이다. 이를  이성애, 이성애자 (heterosexuality, heterosexual)라고 한다. 10의 경우도 어쩌면 익숙하고 알기 쉽다. 동성에게 끌리고 이성에게 끌리지 않는 것이다. 남자라면 남자에게, 여자라면 여자에게 이끌리는 경우이다.  동성애, 동성애자 (homosexuality, homosexual)라고 부른다.

이제부터는 조금 생소할 수도 있다. 11은 동성에게도 이성에게도 끌리는  양성애, 양성애자 (bisexuality, bisexual)에 해당한다. 남성에게 끌리기도 하고 여성에게 끌리기도 하는 것이다. 이성애자, 동성애자가 느끼는 감정을 모두 느낀다고 보면 된다.

마지막으로 00이다. 보통의 경우 ‘정말 그런 사람이 있을까?’ 의심을 가지게 마련인 생소한 개념이다. 바로  무성애, 무성애자 (asexuality, asexual)이다. 성별에 의한, 또는 성적인 이끌림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성적인 이끌림을 느끼지 못한다면 ‘플라토닉 러브’와같은 정신적인 사랑은 가능할까? 그런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고 한다. 무성애자라는 같은 이름 아래에도 여러 성향들이 있어서(영문 위키피디아: Asexuality) 자신이 상상하는 무성애의 모습으로 마음대로 단정지어서는 안 된다.  물론 이러한 태도는 다른 성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무성애자에 대한 자세한 것은 나중에 따로 다루는 것이 나을 것 같다. 지금은 큰 그림만 그려보자.

그런데 과연, 정말 성적지향을 0과 1로 표현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는 것이 대부분의 생각이다

Research over several decades has demonstrated that  sexual orientation ranges along a continuum, from exclusive attraction to the other sex to exclusive attraction to the same sex.
 – 미국심리학회: Sexual orientation and homosexuality  중
‘What is sexual orientation?’

수십 년에 걸친 연구에 따르면  성적 지향은 온전히 이성에게만 이끌리는 것에서부터 온전히 동성에게만 이끌리는 것까지  연속적인 범위에 걸쳐서 존재한다.
 – 미국 심리학회: 성적 지향과 동성애 中
‘성적 지향이란 무엇인가’

위와 같이 두 자리로 표현할 경우 0.3 0.7이라거나 0.9 0.1과 같이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는 뜻이다. ‘이성에게 많이 끌리는데 동성에게도 가끔 끌리기도 해’라든지, ‘동성에게 주로 끌리는데 이성도 좋아할 수 있긴해’와 같은 경우이다. 이러한 경우들에 대해 모두 이름을 붙이기는 힘드니까 위와 같이 0, 1로 표현될 수 있는 경우에 대해 동성애, 이성애, 양성애, 무성애라는 이름을 붙인 것이다.

사실 윗 문단의 내용은 인용한 문장과 의미가 정확히 일치하지는 않는다. 인용한 문장에서는 킨제이 척도에서와 같이 ‘이성 — 양성 — 동성’의 스펙트럼을 말하였기 때문이다. 반대로 내가 표현한 두 자리 방식은 무성애자의 경우까지 표현할 수 있고 이것은 스톰스 척도, 스톰스 섹슈얼리티 축(The Storms Scale, The Storms Sexuality Axis)에 가깝다. 스톰스 섹슈얼리티 축은  이곳의 ‘The Storms Scale’의 그림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리고 과연, 정말 두 자리로 표현할 수 있는가 ―남성/여성, 이성/동성의 이분법적 개념으로 표현할 수 있는가― 에 대하여 의문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다성애, 다성애자 (polysexual, polysexuality)는 그런 인식을 바탕으로 한다. 양성애와 달리 이분법적 성별로 설명하기 힘든 다양한 성별에 대해서도 고려한 여러 성에 대한 이끌림을 느낀다. (영문 위키피디아: polysexuality)

마지막으로 소개할 것은  범성애, 범성애자 (pansexual, pansexuality)이다. 범성애의 영문 표기의 ‘pan-‘이라는 접두어는 ‘모든(all, every)’이라는 의미이다. 즉 모든 성에 대하여, 성별을 따지지 않고 이끌림을 느낀다는 것이다. 범성애도 다성애와 같이 이분법적 성별 밖에 있는 성별을 고려하는데, 다성애가 ‘여러(다, 多, many)’ 성에 대한 것이라면 범성애는 ‘모든(범, 汎, all)’ 성에 대한 것이다. 그리고 양성애는 여성 또는 남성이라는 성별에 대한 인지를 가지고 있는 반면 범성애는 상대의 성별 자체가 고려 대상이 아니라는 설명도 있다. 그러나 성별이라는 문제는 그리 단순한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양성애자라고 해서 남, 녀 두 가지 성별에 국한해서 이끌리는 것이 아니라고 하며 이러한 설명에 반대하는 양성애자들도 있다고 한다. (영문 위키피디아: pansexuality)

이렇게 많은 개념들을 소개하였지만  경계가 서로 명확하지는 않다.  그러면 그 애매모호한 경계에서 자신이 어디에 속하는지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자신의 성적 지향은 타인이 판단할 수도 알 수도 없다.  특히 성별 구분에 대한 인식을 담는 다성애나 범성애의 경우 타인이 겉으로만 봐서는 전혀 판단할 수 없다. 다른 것들도 마찬가지다. 본인이 사람을 보며 어떻게 느끼는지는 타인은 절대 알 수 없다. 타인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자기 탐색을 도와주는 것 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스스로에 대하여 판단하는 것이기 때문에 세월이 지나면서 많은 것을 겪고 더 많은 생각을 거쳤을 때 바뀔 수 있는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그러나 과연 자신이 어디에 위치하는지 명확히 표현해야할 필요가 있을까? 그것 또한 당사자가 판단하기 나름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 분류를 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여 이 많은 구분 중 한 가지로 결정을 내릴 것이고 어떤 구분되는 틀 안에서 자신을 이름짓고자 하는 욕구를 느끼지 않는 사람,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사람의 경우에는 그저 ‘나는 나’인 채로 만족할 것이다.

결국 이러한 분류의 의미는 성적 욕구, 성적 이끌림에 대하여 다양한 방식이 존재하고 그것이 동등한 선 상에 있음을 알려주는 것에 있다고 생각한다. 서로 다른 성애의 방식을 일일이 구분하고자 한다면 끝이 없을 뿐만 아니라 결국에 분류가 무의미할 지경에 이를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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